11월 11일(토)
# 1
고등학교 졸업 30주년 기념 동기회가 오늘 저녁에 있었다.
20주년 기념 동기회는 모교(밀양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진행했었는데, 30주년은 서울 동기회가 주관해서 지방에 있던 동기들을 서울로 초청해서 개최했다.
어떤 친구들은 정말 꼬박 30년 만에 만나는 거였다. 하지만 역시 고등학교 친구였기에 악수 한번 하고 어깨 툭 치는 순간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고등학교 그때로 돌아가서 짓궂은 농담을 하며 바로 예전의 그 관계로 복원되었다. 지금은 무얼 하는지,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오늘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은 뭘 하고 지내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 꽃을 나누느라 금방 시간이 흘렀다.
유붕이 자원방래면 불역열호아!
어제 기억에 남는 한 장면
친구 K와 P가 내게 특별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유인 즉, K는 약 5-6년전에 아버님이, P는 10여년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 내가 그때 조화(弔花)를 별도로 보냈었던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나는데. 두 친구는 나랑 아주 가까운 친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약간은 친분이 있는 사이.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이야기를 꺼내며 다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당부하신 말씀.
“지인의 기쁜 일에 인사를 못 챙길 수는 있지만 슬픈 일에는 반드시 인사를 챙겨야 한다. 그에게는 큰 힘이 되고, 또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든다.”
꼭 그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가능한 애사(哀事)는 챙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정말 친구들은 그렇게 느낀 모양이다. 내 나이대가, 앞으로는 경사보다는 애사가 더 많을 텐데, 잘 챙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2 책건문 :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1) 엘모어 레너드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삶에서 지루한 부분을 뺀 나머지가 이야기이다.” 지루한 부분이란 우리 주인공과는 아무 관계도 없고 그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이야기 속 모든 요소들(이를 테면 서브플롯, 날씨 배경, 심지어 어조까지도)은 독자가 죽도록 알기 원하는 사실에 명확한 영향을 주어야만 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결국 그 일은 주인공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독자를 사로잡고 계속 읽게 하는 힘은 바로 도파민을 연료로 하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고 싶은 욕망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2) 대표적인 잘못된 믿음이 하나 있다.
잘못된 믿음 : 아름다운 글은 모든 것을 이긴다.
실제 : 이야기가 아름다운 글을 이긴다. 언제나.
좋은 이야기를 쓰려면 무엇보다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믿음만큼 작가들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누가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아주 논리적이고 또 명확하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를 쓰려면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의 문제는 다른 많은 글쓰기 신화처럼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경우 ‘잘 쓴다’’라는 것은 대개 아름다운 언어나 선명한 이미지, 실감 나는 대화, 통찰력 풍부한 은유, 흥미로운 인물, 그리고 그 가운데 펼쳐지는 아주 생생한 감각의 세부사항들을 의미하게 마련이다.
3) 듣기엔 아주 그럴 듯하다. 과연 <다빈치 코드>가 위 원칙에 부합할까? 전혀 아니올시다. 그러면 <다빈치 코드>는 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첫 페이지에서부터 독자로 하여금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알고 싶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다. 나머지 모든 것(멋진 인물들, 훌륭한 대화, 생생한 이미지, 매혹적인 문장)은 부수적이다.
4) 혼동하면 안 된다.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야기 쓰는 법을 배우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잘 쓰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독자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잘 썼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3 책건문 : 곁에 두고 읽는 니체
1) 예전에 붓다의 가르침을 전하는 몇 권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중 스리랑카 출신의 승려 월폴라 라홀라의 책 <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가 감명 깊었는데, 거기에 이런 글이 있다.
“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칭송한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우수한, 혹은 동등한 친구와 가깝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붓다도 이런 말에 동의했지만, 만약 그런 친구를 얻을 수 없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고 말했다.
2) ‘무소의 뿔’은 최초로 성립된 불경인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말로, 무소는 코뿔소를 뜻한다. 코뿔소는 원래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습성이 있다. 고대의 수도승들도 걸식을 하며 홀로 수행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다. 이처럼 깨달음의 길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한 곳을 향하듯이 혼자 살라는 충고다.
3) 같은 길을, 나보다 우수하거나 최소한 동등한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은 좋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혼자 가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가 알고 있는 너그럽고 선한 이미지의 붓다와는 다르기에 사뭇 놀랍다. 평생을 세상 사물에 대한 관용을 주장했던 붓다라면 어떻게든 뭇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가라고 할 것 같은데 말이다.
4) 놀라운 일은 붓다의 말에서 니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라는 말은 독립된 인간이 되라는 뜻인데, 이는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행동에 끝까지 책임지는 인간이 되라고 했던 니체의 말과 동어반복처럼 들린다. 19세기 후반을 지독하리만치 공격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던 니체가 온화하고 관용적인 이미지의 붓다와 의미가 통하니 무척이나 흥미롭다.
5) 니체에게 있어 우정이란 독립적으로 살아갈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나눠 가질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 까다로운 니체였기에 평생 변변한 친구조차 없이 말 그대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 살았던 것이다.
# 4 명언
1) 편견을 버린다는 것은, 그것이 언제일지라도 결코 늦지 않다. – H.D.드로우 <월든 숲 속의 생활> -
2) 관용은 모두에게 좋을 수 있지만 혹은 아무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 버크 ‘하원에서의 연설 –
3)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더 너그럽게 다룬다 – E.W. 하우 <시골속담> -
4) ‘용서는 해도 잊을 수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 H.W.비처 <인생사상> -
5) 감사할 줄 아는 마음씨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하나이다. 그것은 타고나는 것으로,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창조할 수 없다. – 헬리팩스 경 <작품집> -
6)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잔인하다. – 세네카 <서간집> -
7) 신중한 사람은 국가를 감독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를 재생시키거나 폐허로 만드는 것은 정열가들이다. – 벌워 리튼 <린치> -
8) 청하는 곳에 얻음이 있고, 구하는 곳에 찾음이 있으며, 두드리는 곳에 활짝 열림이 있다. – C.스마트 <다윗에게 바치는 노래> -
# 5 개념탑재 : 득롱망촉(得隴望蜀)
- 농서지방을 얻었음에도 촉 나라까지 바라는구나.
- 후한을 건국한 광무제(유수)의 일화에서 유래한 말
- 같은 상황에서 조조는 다른 선택을 했다.
- 내 힘, 상대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대처해야 함
팟캐스트 듣기
http://podbbang.com/ch/13345?e=2245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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