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0일 (수)
# 1
학창시절 시험 준비할 때, 시험 전전날까지 과목당 한 장짜리 요약본을 만들었다. 시험범위가 많다는 느낌이 들지만 일단 한 장으로 핵심을 축약해 놓으면, ‘뭐, 이 정도는 내가 커버할 수 있지’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 뭔가 내 마음이 복잡해 질 때는 한 장(one page)으로 현안을 정리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 2
엑셀로 현재 진행 중인 민사소송, 형사소송, 자문사건, 상담중인 사건 목록을 다시 정리한 다음 A4 한 장에 다 들어갈 수 있도록 편집해서 출력했다.
엄청 사건이 많아 허우적거렸는데, 막상 한 장에 다 몰아 넣어 정리해 보니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정리를 하지 않으면 소홀해지거나 놓치는 일이 생긴다. 매일 이 현황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일을 챙겨야겠다.
# 3
딱 부러지게 말하는 것.
로펌에서 처음 변호사 생활 시작할 때 선배들이 하던 조언.
‘변호사는 단정적으로 말하면 안 돼. 항상 변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둬야 해. 안 그러면 책임이 따르게 되거든.’
그래서 상담을 하든 변호사 의견을 쓰든, 결론을 애매하게 쓰는 습관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의뢰인으로서는 막상 상담을 하거나 요청한 의견서를 받아보고 나서는 “그래서? 결론적으로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뭐 이리 애매모호해?”라는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대형 로펌을 나와서 내가 내 방식으로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던 시점부터, 나는 가능하면 ‘딱 부러지게’ 의견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4
“이 사건, 우리가 질 확률이 70% 이상입니다. 승소가 목표라면 저는 맡지 못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거의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이런 서비스모델은 0000법 위반 소지가 상당히 큽니다. 저 같으면 이렇게 진행 안 합니다.”
“이런 서비스 모델은 0000법 위반 소지가 분명 있긴 합니다. 하지만 아직 선례가 없습니다. 그리고 000법 위반이 되었을 때 ~~~ 정도의 페널티가 예상은 됩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Risk를 떠안을 수 있다면 해볼만한 일입니다.”
일이라는 것이 나중에 변수가 생겨서 다른 길로 가게 된다 하더라도, 일정 시점에서의 분명한 입장 표명은 나나 의뢰인으로 하여금 결단을 신속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려고 한다. 결단이 늦어지는 것 자체가 Cost니까.
# 5
며칠 전 주문했던 ‘세익스피어 비극론’을 오늘 배송받았다.
개념탑재를 준비하면서 세익스피어 비극을 요약하다보니 비극의 세계에 관심이 생겼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071882
원래 비극의 원형은 그리스 비극이다.
단순히 슬픈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비극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그리스 비극은 일정한 요건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아주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힘에 휘말려 서서히 파멸해 가는 서사적인 구조 등이 필요하다.
내가 세익스피어 비극을 흥미 있게 본 것은, 내 본업인 소송/분쟁 업무야 말로 ‘인간비극의 샘플’들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욕망으로 분쟁이 생기거나(맥베드 타입),
스스로의 우유부단함과 현실을 직면하지 못함으로 인해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도 있고(햄릿 타입)
질투, 시기심이 원인이 되어 사태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으며(오댈로 타입),
아집과 독선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리어왕 타입).
세익스피어 비극에는 인간사 분쟁의 원형(原型)이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세익스피어 희곡을 통해 살펴본 법률분쟁 유형 분석’과 같은 하이브리드 컬럼이나 특강을 진행해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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