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1일 (목)
# 1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 있을 때 ‘고민노트’를 작성한다.
‘날짜 – 고민내용 – 해결방안 있는지 여부’ 순서로 쭉 작성해 본다. 뾰족한 해결방안 없이 시간만이 답인 경우도 있다. 비정기적으로 이런 고민토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쯤 된다.
놀라운 것은…
한 달만 지나면 고민노트 내용 중 상당수는 더 이상 고민거리가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고작 한 달도 안 갈 고민거리로 그리 힘들어 한단 말인가.
한달 전의 고민노트를 보고 있노라면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는 내 과거모습을 발견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학습효과가 생긴 것일까. 요즘에는 머리 아픈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또는 ‘내가 너무 민감해서 그러는 거야’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진짜 수준 있는 고민 아니면 시작하지도 말고 쿨하게 넘기자.
# 2
의뢰인과 상담을 할 때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몸을 의뢰인쪽으로 쏠리도록 하려고 노력한다.
의자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멀찍이 앉아서 의뢰인 이야기를 들으면 의뢰인이 느끼기에도 그렇고 본인 스스로도 이야기에 몰두하기 힘들다. 언젠가 항상 멀찍이 앉아서 상담을 하는 후배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말했었다.
경청(傾聽)에서 ‘경(傾)’은 ‘기울 경’이다. ‘경사(傾斜)’라고 할 때의 그 ‘경’이다. 즉, 말 하는 사람 쪽으로 몸을 기울어서 듣는 것이 ‘경청’이다.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그런 행동 하나가 상대방에게 주는 심적인 효과는매우 크다.
# 3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
말은 쉽지만 잘 안 된다.
시각, 청각 중복장애를 가졌던 헬렌 켈러 여사가 미국 대공황기인 1933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발표했던 ‘사흘만 볼 수 있다면(Three Days To See)’라는 수필은, 평생 맹인으로 살았던 그녀의 순결한 바램, 단 사흘만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어떻게 그 사흘을 보내겠다는 계획서이다. 수필을 읽다 보면 그 절절함에 가슴이 미어지고, 볼 수 있음에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수필의 중요부분을 옮겨본다.
누구나 막 성년이 되었을 즈음 며칠 동안만이라도 소경이나 귀머거리가 되는 경험을 해 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축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둠은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일깨워줄 것이며, 정적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려줄 것입니다.
나는 가끔 두 눈이 멀쩡한 친구들에게 그들이 보는 게 무엇인지 알아보는 실험을 해봅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마침 숲 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고 돌아 온 참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별거 없어." 내가 그런 대답에 익숙해지지 않았다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눈이 멀쩡한 사람들도 실제로는 보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답니다.
어떻게 한 시간 동안이나 숲 속을 거닐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나는 앞을 볼 수 없기에 다만
촉감만으로 흥미로운 일들을 수백 가지나 찾아 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오묘하게 균형을 이룬 나뭇잎의 생김새를 손끝으로 느끼고, 은빛 자작나무의 부드러운 껍질과 소나무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껍질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집니다. 봄이 오면 자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첫 신호인 어린 새순을 찾아 나뭇가지를 살며시 쓰다듬어 봅니다.
꽃송이의 부드러운 결을 만지며 기뻐하고, 그 놀라운 나선형 구조를 발견합니다. 자연의 경이로움은 이와 같이 내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운이 아주 좋으면, 목청껏 노래하는 한 마리 새의 지저귐으로 작은 나무가 행복해하며 떠는 것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시냇물도 즐겁지만 수북하게 쌓인 솔잎이나 푹신하게 깔린 잔디를 밟는 것도 화려한 페르시안 양탄자보다 더 반갑습니다. 계절의 장관은 끝없이 이어지는 가슴 벅찬 드라마이며, 그 생동감은 내 손가락 끝을 타고 흐릅니다.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앞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여러분의 눈길을 어디에 머물게 하고 싶습니까?"
첫째 날에는 친절과 겸손과 우정으로 내 삶을 가치 있게 해준 사람들을 보고 싶습니다. 먼저 내 어린 시절 내게 다가와 바깥 세상을 활짝 열어 보여주신 사랑하는 앤 설리번 메이시 선생님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윤곽만 보고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꼼꼼히 연구해서, 나 같은 사람을 가르치는 참으로 어려운 일을 부드러운 동정심과 인내심으로 극복해낸 생생한 증거를 찾아낼 겁니다. 또한 선생님의 눈빛 속에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던 강한 개성과 내게도 보여주셨던 전 인류에 대한 따뜻한 동정심도 보고 싶습니다.
눈은 '영혼의 창'이라지만, 나는 친구의 마음을 눈을 통해 볼 수 없습니다. 그저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만져지는 얼굴의 윤곽을 느낄 뿐입니다. 웃음과 슬픔,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감정들도 손으로 감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친구들의 얼굴을 만져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냅니다. 하지만 표정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생각이나 내게 취하는 행동만을 가지고는 그들의 성격을 도무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눈빛이나 안색이 돌변하는 것을 주시해서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겐 없습니다.
[중략]
내가 만일 단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가장 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나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동안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내 눈을 어떻게 써야 할까?’ 셋째 날이 저물고 다시금 어둠이 닥쳐올 때, 이제 다시는 자신을 위한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리라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자 이제 그 사흘을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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