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수)
# 1 언제나 어려운 미수금 문제
월말이 되어 빌링팀으로부터 미수금 관련 보고를 받았다. 변호사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미수금 문제는 항상 어렵다. 상담을 하는 건들은 다들 급한 건들이다. 며칠 내로 소장이나 가압류 신청서, 내용증명 들이 나가야 해서 일단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결제가 되지 않는다. 의뢰인들의 사정도 딱하니 그럴 테지만. 급하게 진행했던 건들 중에서는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착수금을 받지 않고 일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의뢰인은 착수금도 내는 것을 꺼려 한다. 그런 사건은 끝까지 돈을 받기도 좀 민망하긴 하다. ‘돈이 입금되기 전에는 일에 착수하지 않습니다.(서면을 내보낼 수 없습니다.)’라고 야박하게 하는 일에는 여전히 익숙지 않다. |
# 2 국어 용법 중에서
부탁/당부
누구에게 무엇을 청하는 것을 부탁이라 하고, 누구에게 무엇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을 당부라고 한다. 부탁은 일반 명사를 폭넓게 목적어로 쓸 수 있지만 당부는 동작이 들어 있는 명사만 목적어로 삼을 수 있다. “공무원이 선물을 부탁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거나 여행을 가면서 자기 집을 나에게 부탁했어 또는 “그는 친구에게 아들을 부탁하고 죽었다.” 같은 경우에 ‘선물, 집, 아들’ 같은 것은 행위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부탁하다’는 이런 것을 목적어로 삼을 수 있으나, ‘당부하다’는 이런 것을 직접 목적어로 삼을 수 없다. “여행을 가면서 나에게 지기 집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라고 하거나 “그는 친구에게 아들을 돌봐 달라고 당부하고 죽었다.”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부탁은 그 자리에서 거절할 수 있지만 당부는 거절할 수 없다. 당부한 것은 일단 들은 다음에 그것을 실천하거나 하지 않으면 된다. ‘부탁’은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지만, 당부는 안 지켜도 약속을 안 지키는 것은 아니다. 당부대로 하지 않으면 지시나 뜻에 따르지 않은 것이 된다. “그가 취직을 부탁했지만 거절했다.”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그의 취직 부탁을 들어주라고 당부하셨으나 그렇게 해 드리지 못했다.”처럼 써야 한다. 부탁은 청에 가깝고, 당부는 지시에 가깝다. 그래서 부탁은 아쉬운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보통이고, 당부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부탁은 주체가 객체에게 어떤 행위를 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 행위가 주체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했을 때에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내용이 주체에게는 별로 이익이 되지 않지만 객체에게 큰 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부탁하다’를 쓰지 않고 ‘당부하다’를 쓴다. 태풍이 불고 있으니 야영객은 개울에서 나와 대피하라고 당부해야지 부탁하는 것은 아니다. 일교차가 심하니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해야지, 부탁하는 것은 아니다. |
심문/신문
판사가 재판정에서 원고의 주장을 듣고, 피고인이나 증인을 상대로 직접 묻는 절차를 심문(審問)이라고 한다. 어원을 따진다면 따져 묻는다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판사가 원고와 피고에게 유, 무죄의 주장을 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심문은 원고와 피고의 진술을 직접 듣는 것이 통례이지만, 민사사건의 경우 변호사를 통해 서면으로 진술한 것을 심리하는 것도 심문에 속한다. 이에 비하여 신문(訊問)은 피의자나 증인을 불러다가 직접 대면하여 캐묻는 행위를 의미한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피고인의 인적사항을 묻는 것을 인정신문(人定訊問)이라 한다. 증인을 법정에 출석시켜서 판사가 직접 묻는 것을 증인신문이라 한다. 어떤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서 직접 물어 보는 행위는 모두 신문에 해당한다. 검사나 경찰이 피의자를 앞에 놓고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를 조사하는 행위도 신문에 해당한다. 신문은 반드시 묻는 자와 대답하는 자가 마주 대한 상태에서 진행한다. 따라서 “경찰이 범인은 심문하여 자백을 받아냈다”거나 “검찰의 심문에 묵비권을 대응했다.” 또는 “피의자를 소환하여 심문하기로 했다.” 같은 표현은 옳지 못하다. 이 세 경우 모두 ‘심문’ 대신에 ‘신문’을 써야 한다. |
의의/의미
의의(意義)와 의미(意味)는 말이나 글의 뜻을 나타내는 데는 차이가 없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의의’가 사물의 객관적인 가치나 중요성에 주안점을 둔다면 ‘의미’는 주관적인 가치나 중요성에 주안점을 둔다는 데 있다. ‘남북회담의 의의’라고 하면 남북회담이 역사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는 말이고, ‘남북회담의 의미’라고 하면 회담을 추진한 당사자들이 느끼는 의미, 회담을 지켜보거나 참여한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뜻한다. 그래서 어떤 일이 “나에게 의미가 있어”라고 하지만 “나에게 의의가 있다.”라고는 할 수 없다. ‘의의’에는 ‘나에게’라는 부사어를 붙일 수 없다. “휴가를 의미 있게 보낸다.”라고 하면 휴가를 보내는 사람이 의미 있게 보낸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서 시작한 일이다.”라고 하면 일을 시작한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의의’는 ‘누구에게’라는 부사어가 필요 없다. 절대적으로 또는 보편적으로 ‘의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는 의의가 자못 크다.”라고 하면 행사 자체에 가치나 중요성 또는 보람이 있다는 말이다. |
# 3 시 – 천 개의 바람이 되어(I Am A Thousand Winds)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미국 9.11 테러 1주기 추도식 때 아버지를 잃은 11세 소녀가 낭독하여 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한 시다. 특이하게도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하지만 언제 누가 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나는 거기에 잠들어 있지 않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
나는 눈 위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입니다.
나는 무르익은 곡식을 비추는 햇빛이며
나는 부드러운 가을비입니다.
당신이 아침에 깨어날 때
나는 하늘을 고요히 맴돌고 있습니다.
나는 밤하늘에 비치는 따스한 별입니다.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세요.
나는 거기 없습니다.
나는 죽지 않았답니다.
이 시에 가사를 붙인 노래는 미국에서 널리 알려졌다.
Hayley Westenra - I Am A Thousand Winds
https://www.youtube.com/watch?v=2NpB6VCUFEs
그리고 국내에서도 번안이 되어 불리다 세월호 사태 추모곡으로 많이 불려졌다.
임형주 – 천 개의 바람이 되어
https://www.youtube.com/watch?v=6fnFOQwvQ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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