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금)
# 1
통상 금요일에는 재판이 많다(반대로 월요일에는 재판이 적게 잡힌다). 오늘 나는 3건의 재판. 준비서면 작성하고 증거 준비하는 일이 재판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은 법정에서의 변론. 승소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판사를 잘 만나야 하고(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상대방 변호사를 잘 만나야 하며(예리하게 파고 들지 못하고 실수도 하는 사람), 의뢰인 잘 만나야 한다(변호사와 같이 사건을 잘 이끌어 가고 자료 협조도 잘 되는 사람). 물론 위 조건을 다 충족하기는 쉽지 않지만. 재판을 진행할 때는 촉수(觸手)가 예민해 진다. ‘어? 재판장이 왜 저런 말을 하지? 살짝 웃는데, 왜 저러지?’ ‘어? 상대변호사가 재판장의 저 질문에 좀 머뭇거리네? 뭔가 숨기고 싶은 게 있나?’ 짧으면 5분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증인신문이 없을 경우) 민사재판기일에서 몇 가지 징표들을 종합하고 사건의 향배를 추측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파악해야 한다. 스파이처럼… 그런 점이 송무 변호사의 스릴 아닐까 싶은데. 오늘도 몇 가지 단서를 얻었다. 앞으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된다. |
# 2 생각의 재료
<1> 가는 말이 고와야 옛날에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어이 백정 고기 한 근 다오'" "그러지요." 박씨는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 주었습니다. 함께 온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의 신분이긴 하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헸습니다. "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예, 고맙습니다." 기분 좋게 대답한 박씨는 선뜻 고기를 잘랐습니다. 그런데 먼저 고기를 산 양반은 그것을 보고 화가 나서 빽 소리를 지르며 따졌습니다.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적으냐?" 박씨가 대답했습니다. "네, 그야 손님 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랐으니까요." |
<2> 내 몸에 맞아야 명검이지
16세기 일본의 전국시대. 노부나가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적장 요시모토를 격파하고 그가 쓰던 칼을 전리품으로 획득. 천하에 이름난 명검이었던 요시모토의 칼을 감회깊게 살펴보던 노부나가는 부관을 불러 이 칼을 4치 5푼 끊어내고 다시 갈아오라고 명함. 주위 사람들이 놀라서 그 이유를 묻자, "칼의 목표는 칼을 휘두르는 주인의 목숨을 지켜주는 데 있다. 칼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주인의 체력을 소모시켜 주인이 목숨을 잃게 되면 이는 명검이 아니다." |
# 3 책건문 :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중에서
영어문장과 한글문장의 차이 – 아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
한글 문장은 영어와 달리 되감는 구조가 아니라 펼쳐 내는 구조라서 역방향으로 되감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풀어내야 한다. 영어가 되감는 구조인 이유는 관계사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관계 부사나 관계 대명사를 통해 앞에 놓인 말을 뒤에서 설명하며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가는 구조가 흔할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어에서 관계사라고 할 만한 건 체언에 붙는 조사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문장은 되감았다가 다시 나아갈 이유가 없다.
The man who told me about the murder case that happened the other day was found being dead this morning. 일전에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내게 이야기해 준 그 남자가 오늘 아침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앞의 영어 문장이 관계사를 중심으로 두 번이나 되감기면서 의미를 확장해 나아갔다면, 한글 문장은 계속 펼쳐졌다. 영어 문장이 되감기는 공간으로 의미를 만들었다면 한글 문장은 펼쳐 내는 시간으로 의미를 만든 셈이다. 그러니 한글 문장은 순서대로 펼쳐내면서, 앞에 적은 것들이 과거사가 되어 이미 잊히더라도 문장을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장 요소들 사이의 거리가 일정해야 한다. |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첫째 문장은 주어인 ‘나’를 수식하는, 동사 ‘걸어가다’의 관형형 ‘걸어간’과 그걸 수식하는 부사 ‘계속’이 만든 문구 ‘계속 걸어간 나는’이 만드는 거리와, 그 뒤로 이어진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가 만드는 거리가 다르다. 앞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밭은 느낌이다. 이렇게 거리가 일정하지 않으면 뭔가 펼쳐지지 않았다는 인상을 줄 수밖에 없다. 둘째 문장처럼 거리가 일정하게 펼쳐 낸 경우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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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개념탑재(2017.10.20.)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열흘 붉은 꽃이 없다 - 이 말이 노랫말에 쓰였는데... - 주로 '권불십년'(권력은 10년을 가지 못한다)과 같이 쓰임
-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연관 - 이형기의 낙화 ;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 내 마음대로 선곡 : 봄날은 간다. (밀양출신 박시춘 선생의 곡) |
팟캐듣기 http://www.podbbang.com/ch/13345?e=22433343 |
- 이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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