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와 유방의 성격차이, 후흑학이란?http://blog.naver.com/mitchum0321/220974380974
2000년 전의 이야기인 초한전의 주인공 항우와 유방은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들이다. 항우와 유방을 안다면 중국을 이해하는 데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아울러, 극명히 다른 두 가지 성격을 우리내 인생에 끌고 들어와 때로는 항우처럼, 때로는 유방처럼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한다면 어떨까.
초한전은 BC 206년에서 BC 202년 사이에 벌어진, 5년 간의 전쟁 이야기다. 대강의 중국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분열이 생기면서 서로 자신이 왕이라며 싸웠던 시대가 춘추시대다. 춘추시대보다 더 치열하게 싸웠던 때가 전국시대다. 당시 등장했던 것이 유명한 제자백가다. 그리고 이 춘추전국시대 때의 혼란을 통일했던 인물의 진나라의 진시황이다. 하지만 진시황이 집권하고 불과 몇년 후 병들어 죽고 아들 때로 넘어가면서 진나라는 쇠망해진다. 결국 각 지역에서 여러 영웅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중 대표적인 두 사람이 바로 항우와 유방이다.
항우는 BC 232년에 태어났다. 항우는 초나라 사람으로 명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오늘날로 치면 금수저인 셈이다. 무장 가문에서 태어난 항우는 학식과 전투 능력이 출중해, 직접 출전한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명장이었다. 반면 유방은 빈농의 장정으로 BC 247년에 태어났다. 그는 지방의 아주 작은 행정단위에서 행정실무를 보는 정장(오늘날의 이장과 유사)이었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토목공사가 많이 이루어졌었고, 이에 따라 유방은 황제의 능을 공사하는 인부를 데려오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책임을 맡았던 유방이 죽음을 위협받게 되자 산에 숨어 지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작은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면서 반란군을 이끌게 되었다. 이후 소문이 돌면서 점점 더 세를 확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가문도 별 볼 일 없고, 돈도 없고, 학식과 지식도 부족했던 유방은 어떻게 중국 최대의 한(漢)제국 황제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항우가 직선적이고 독단적인 장수였던 데 비해 유방은 남의 말을 경청하는 신중한 성품이었다. 유방은 ‘덕(德)’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며, 그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나갔다. 반면 항우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참모의 의견을 수용하지 못했고 독단적인 데다 ‘의심’이라는 병까지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유방은 ‘소통의 달인’으로서, 전쟁에서 이겼다기보다 “민심을 얻는 데 이겼다”라고 할 수 있다.
유방에게는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여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위기를 극복해주고 항우를 멸망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장량(張良), 한신(韓信), 소하(蕭何)가 바로 유방의 1급 참모들이었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은 일종의 조직력 싸움이었다. 자신의 실력만을 믿고 조직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항우에 비해 유방은 행정참모 소하, 작전참모 장량, 천재적인 무장 한신, 선봉대장 번쾌 등 수많은 인재를 수하에 두고 절묘한 팀 플레이를 연출할 수 있었다.
때로는 참모들을 경쟁시키고, 때로는 서로 이해하게 하면서도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종횡으로 협조케 하는 유방의 참모 용병술이야말로 그에게 천하를 가져다준 가장 큰 이유였다. 이처럼 절묘한 ‘유방의 참모학’은 개인이나 기업 경영의 조직 관리에도 귀중한 교훈이 된다.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제패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한신, 장량, 소하 이 세 사람을 참모로 얻어 잘 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우는 단 한 사람의 참모 범증조차도 쓰지를 못했다. 이것이 내게 패한 이유이다.
사면초가 깊이 읽기
항우와 유방이 벌인 5년간 전쟁이 바로 그 유명한 초한지의 배경이다. 그 5년간의 대단원의 막을 이야기한 것이 바로 유명한 고사 '사면초가' 다.
초의 항우가 한의 유방군에 패하여 해하에서 포위되었을 대 사방을 에워싼 한나라 군사 속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항우는 크게 놀라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라고 슬퍼했다. 초나라 노래가 초나라 군사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자 사기가 떨어지면서 병사들은 대거 탈영하기 시작했다. 이는 한나라 고조가 꾸며낸 심리작전이었다. 결국 다음 날 항우는 겹겹의 포위를 뚫고 나가 오강에 이르렀는데 그 때 항우의 곁에는 이십여 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항우는 오강 기슭에서 목을 베어 자살했다.
한나라 군이 초나라 군을 상대함에 있어 특이한 점은 무력을 쓰지 않고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는 점이다. 이를 협상론적으로 풀면 이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초나라 병사들은 외형적으로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즉 너희들과 싸우겠다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속마음(interest)은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혹시라도 한나라 군사가 이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의 내면(hidden interest)에는 '내가 투항하면 과연 살려줄까?', '아 정말 고향생각이 난다. 어른들은 잘 계실까?'라는 생각이 존재했을 것이다.
한의 유방은 한나라 군영에서 초나라 노래를 부르도록 함으로써 '우리 군사 중에는 이렇게 초나라 군사들도 많이 넘어와 있다. 이제 대세는 기울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이는 상대의 속마음을 고려한 심리전이었다. 유방은 초나라 병사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들려줌으로써 '우리 군영에는 투항한 초나라 군사들이 많아. 그러니 걱정말고 투항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너희들 고형 생각 많이 나지?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고향 가서 가족들 만나야 하지 않겠어? 잘 생각해봐.'라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초나라 병사들의 내면을 자극했다.
이처럼 유방의 초나라는 전면전이 아닌 심리전으로 상대에게 승기를 잡았고 이를 위해 상대방의 속마음과 내면을 파악하는 작업이 있었음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해하 전투에서 패하고 오강(烏江) 가에서 자결한 항우를 기리며 후세의 시인인 두목(杜牧)이 썼던 '제오강정(题乌江亭)'이란 시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가사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예측하기 어렵나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대장부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자제다재준)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모택동은 "적어도 항우는 정치가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뛰어난 무사였을 순 있지만,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또 식솔들을 책임지는 정치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 패배의 순간에, 비굴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자리를 피하고 항우가 재기를 노렸다면 천하의 승패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신의 '과하지욕'처럼 큰 일을 하기 위해선 수치스럽더라도 자존심을 굽혀야 할 때가 있을 수 있다. 지금은 나의 때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를 굽히며 인내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라 말할 수 있다.
후흑학에 대해
후흑학
저자 이종오
출판 인간사랑
발매 2011.09.30.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를 살다간 이종오(李宗吾)라는 자가 '후흑학'이라는 것을 제창했다. 여기서 '‒학'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실천적인 생존방법으로 일관되어 있다. 그는 다양한 중국의 역사서와 서적 등을 탐독한 후, 어떤 사람들이 영웅이 되는지 살펴봤더니 후와 흑이라는 두가지 결론을 찾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중국인은 "가능한 한 더 많이 철면피가 되고 더 철저하게 흑심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영웅도 될 수 없고, 천하도 호령할 수 없어 '완벽한 성공'을 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후흑을 행할 때는, 표면적으로는 반드시 인의와 도덕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 "말을 명백하게 해서는 안 되고 애매모호하게 끝내야 한다." 등과 같은 몇 개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이종오가 살던 시기 중국은 내우외환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이종오는 후흑구국을 내세우며 패도의 입장에서 본 중국의 역사와 사상에 대해 논하게 된다. 그는 유비와 조조를 모델로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뻔뻔하게 속은 시커멓게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역설하며 그전의 성리학자들이 내뱉던 정명론적 천하관에서 벗어날 것을 설파한다.
이종오는 중국이 그 힘을 숨기고 마땅히 패권 국가들에 맞설 때는 옛날 유비나 조조가 했던 것처럼 뻔뻔하게 대하고 모략으로 그들을 몰아낼 것이며 정치와 외교에 있어서는 상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한다는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비록 그가 병으로 쓰러지는 1944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은 일본을 완전히 몰아내진 못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대륙을 빼앗기게 되지만 그의 사상은 중국 외교계에서 한동안 회자되던 도광양회 전략, 중국의 회사법에서 나오는 향진회사, 향촌 자치공동체, 전국인민대표회의(엄청난 변형을 겪긴 하지만)를 통해서 오늘날 중국에서 계승되고 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다. 물론 착하게 사는 것이 기본적으로 옳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상황에 다 통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는 법이다. 어떤 철학이든, 이데올로기든, 모든 상황에 다 칠할 수 있는 약은 없다. 우리가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이유는, 앞선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 머릿속에 넣은 상태에서 각 상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전략과 전술을 맞춰서 쓰기 위함이고, 이것이야말로 삶의 지혜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태풍이 불어도 두꺼운 소나무는 부러질 수 있지만 대나무는 부러지지 않는다. 혼란의 시대에 휘어질 수도 있는 것이 진정한 삶의 용기다.
책 추천: 항우처럼 일어나서 유방처럼 승리하라
항우처럼 일어나서 유방처럼 승리하라
저자 이시야마 다카시
출판 사과나무
발매 2012.02.15.
<초한지>의 두 주인공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천하를 놓고 겨루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한 참모들의 이야기를 현대 경영에 맞춰 재해석한 책이다. <초한지>의 배경이 되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진(秦)나라 말기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을소냐”라며 군웅이 할거하던,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한(漢)나라 유방이 초(楚)나라 항우와의 치열한 쟁투 끝에 한(漢)제국을 세우고 천하를 통일하기까지의 과정은 현대인의 직장인, CEO들에게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와 함께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과 통찰력을 보여준다.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떠오른 시진핑(習近平)은 한 인터뷰에서 <초한지>의 유방을 거론, 그의 덕과 화합 능력을 극찬하며, 자신의 리더십 키워드로 ‘덕(德)’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유방의 리더십에서 후덕재물(厚德載物:덕을 두텁게 해 만물을 포용함)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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