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의 하루(2)
2005. 3. 7.
블로그를 뒤적이다 예전 글을 발견했습니다. 2005년에 어느 잡지사의 요청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05년이면 제가 로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8년쯤 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제 나이 30대 후반일 때군요. 로펌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공유합니다. |
K라는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그 친구는 지방에서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을 얻어 다니고 있었다. 법학을 전공했기에 법무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틈만 나면 내게 전화를 해서 “야, 우성아,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 말야, 대항력 요건은 일반 주택임대차보호법이랑 어떻게 차이가 있는거냐”는 식의 질문을 해댔다. 금방 즉답을 해 줄수도 있는 사항이면 부담없이 답을 해주었지만, 관련 판례나 주석서를 뒤져 봐야만 답변할 수 있는 내용도 많았기에 나중에 전화로 답해준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야,임마, 빨리 좀 답해줘. 변호사가 그것도 모르냐~~”면서 말이다.
특히 열심히 준비서면을 작성하는 와중에 그런 전화를 받을라치면 흐름도 끊어지고 타격이 심했다. 하지만 이 놈의 친구는 마치 내가 제 비서라도 되는 냥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성의 없이 대략적인 의견만 주는 경우도 있었고, 비서에게 그 친구 전화를 바꿔주지 말 것을 특별히 지시하기도 했다. 이런 법률상담의 경우에는 특별한 보수청구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시간낭비라는 생각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한 2년 정도 간헐적으로 그 친구의 연락이 계속됐었다.
그리고는 한 6개월 정도 그 친구의 연락이 뜸해졌다. 앓던 이가 빠진 듯이 시원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건설-부동산 파트에 있는 선배인 P 변호사님이 내게 “조변호사, K라고 알지? 고등학교 동창이라면서? 오늘 우리 사무실에 왔다갔었어. 그 친구가 조변호사 얘기를 어찌나 하던지... 앞으로 나랑 같이 관리해 보자구. 아주 좋은 Client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해 보니 사건의 내막은 이랬다. 내 친구 K는 서울에서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다가 중견 건설사인 B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B사는 꽤나 큰 공사를 많이 하는 회사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변변한 법무팀이 구성되어 있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B사에 입사하게 된 K는 비록 직급은 낮았지만 워낙 큰소리를 치는 성격덕택에 법무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는데, K는 B사의 모든 소송 및 자문을 내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으로 갖고 온 것이다. 사실 우리 사무실의 건설-부동산 파트 선배들은 B사로부터 사건을 수임하기 위해 여러 루트를 통해 공을 들이고 있었음에도 성과가 별로 없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K가 사건을 잔뜩 들고 제발로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으니 선배들은 놀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에 온 K는 “태평양에는 제 고등학교 친구인 조우성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친구 고등학교 때부터 아주 유명했는데, 변호사가 되어서도 얼마나 겸손하고 친절한지.. 제가 그 친구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회사에도 얘기했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실력좋은 친구변호사가 있는 사무실로 가야 한다구요. 하하하.”라고 말하면서 내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사무소에 사건이 수임되면, 그 사건을 수임(유지)한 변호사에게 성과급이 지급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나는 K가 잔뜩 가지고 온 사건들 때문에 상당한 금전적인 이득을 보게 된 것뿐만 아니라, 선배들에게도 칭찬을 듣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선배로부터 전해 들은 나는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내가 귀찮아 하면서 성의 없이 해주던 답변에 대해서도 그 친구는 그렇게 고마워했던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법률 지식. 이 얄팍한 법률 지식이 어떤 이에게는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도움에 목말라 하는 사람은 의외로 우리 주위에서 흔히 발견된다.
겸손해지자. 그리고 보다 더 노력하자.
K의 그 호탕한 너털웃음이 내게 큰 가르침을 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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