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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이변호사의 하루

뚜벅이변호사의 하루(1) 미스터초밥왕


뚜벅이 변호사의 하루  (1)

2005.02.23  11:42:26

 

블로그를 뒤적이다 예전 글을 발견했습니다.

2005년에 어느 잡지사의 요청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05년이면 제가 로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8년쯤 되는 시점입니다.

그리고 제 나이 30대 후반일 때군요.

로펌 변호사로서의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며 공유합니다. 



인터넷에서 어느 기업의 CEO가 추천한 책이 있어서 지난 주부터 틈틈이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책은 경영서적이 아니라 “만화책”인데, 나도 제목은 여러 번 들었던 일본 만화책인 “미스터 초밥왕”이 바로 그것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이 진정한 초밥 요리사가 되는 과정을 다룬 것인데, 처음에는 내가 무심코 먹었던 초밥 요리에도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가벼운 흥미를 가지고 부담 없이 읽어 나갔다. 그런데 내용을 계속 읽어 나가다가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 맞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저자가 그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는, 진정한 초밥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덕목(재료를 고르는 안목, 조리 기법,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초밥을 먹을 손님의 입장이 되어, 어떻게 하면 그 손님이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제 나도 변호사 생활을 한지 올해로 9년째이다. 9년간의 경험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변호사로서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예전에는 “법률지식”이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에 와서야 “진정으로 의뢰인을 걱정하고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실과 열정”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사실 변호사를 찾아오는 의뢰인은 평생 처음으로 당하는 송사(訟事)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해 주고 힘을 북돋워 주면서 사건을 리드해 가는 변호사는 우선 따뜻한 마음으로 의뢰인의 편이 되어 같이 고민을 들어주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작년에 어떤 회장님의 사건을 맡아서 수행했는데 결국은 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건은 처음부터 힘든 사건이었기에 나로서는 사건의 어려움을 처음부터 의뢰인에게 충분히 설명하였고, 그래도 한번 해볼 요량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리겠노라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모든 과정을 일일이 설명드리고 법정에도 같이 출석하도록 해서 판사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직접 몸으로 느끼도록 유도했다. 즉 판사가 우리측에 서증(書證)이나 증인을 요구하는 상황을 직접 보여주면서, 이와 같은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패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납득시켰었다.

 

다만 이처럼 제한된 자료를 갖고 승소하기 위해서 1주일에 한번씩 꼭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책회의를 했고 승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을 보여드렸다. 결국 패소하고 말았지만 그 회장님은 “조변호사가 최선을 다한 것은 내가 다 압니다. 내가 사업하면서 제대로 자료를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진거지. 좋은 경험 했어요. 수업료 낸 거지. 절대 내게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오히려 날 위로하셨다. 그리고 지난 추석 때는 봉투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넣어 내게 건네 주시면서 양복이라도 1벌 사 입으라고 하셨다. 지난 달에는 그 회장님의 친구분을 모시고 오셔서 큰 사건을 수임하도록 주선까지 하셨다. 패소를 하고도 의뢰인과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다는 뜻 깊은 경험이었다

 

변호사는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냉정한 이성이 아니고 따뜻한 감성이다. 그래서 요즘 로펌에서 신입 변호사들을 리크루팅 할 때 그 변호사의 인성을 여러 각도에서 체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처음에 법대를 진학할 때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런 순수한 열정. 바로 그것이 변호사로서의 가장 중요하고도 강력한 무기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