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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별방송원고

[12회] 엄격하되 모욕은 주지 말라

 

조우성의 인생내공 팟캐스트 12회 듣기


http://www.podbbang.com/ch/12612?e=22129166






행동이 편협하고 방자하며 제후들에게 무례하면 스스로를 망치는 지경이 될 것이다.

行僻自用, 無禮諸侯, 則亡身之至也

- 十過 중 -

 

직원의 원한을 산 CEO

K정공 최 회장은 젊은 나이에 맨 주먹으로 사업을 시작해 지금은 5개의 계열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견 그룹의 CEO다.

 

그런데 어느 날 검찰청 수사관들이 K정공을 들이닥쳐서 회계장부와 사업관련 서류 일체를 압수해 갔다. 그리고 최 회장 집무실의 벽을 밀더니 그 속에 숨겨져 있던 금고를 발견하고는 비밀번호를 눌러서 그 금고 안에 있던 중요서류까지 전부 가져가버렸다. 최 회장의 비서실 직원들조차 그 금고가 있는지를 몰랐다고 한다.

 


나는 K정공의 의뢰를 받아 변호사로서 검찰의 수사에 대응하면서 여러 가지 사실들을 알게 됐다. 누군가가 검찰에 K정공 최회장의 비리(분식회계)에 대해 투서(投書)를 제출했는데, 그 투서 내용 중에는 도저히 K정공 내부인이 아니면 알 수 없을 은밀한 사실들이 적혀 있어서, 검찰은 그 투서를 믿을 만 하다고 생각하고 K정공에 대한 압수를 벌였던 것이다.

 

형식상 주식회사였을 뿐 실질적으로는 최 회장 개인회사처럼 운영되던 K정공이었기에 막상 자료들을 펼쳐보니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는 K정공의 변호사로서 어떻게든 K정공을 변호하려 노력했으나, 수사가 진행될 때마다 검찰은 K정공의 은밀한 내부자료들을 들이 밀면서 최 회장을 압박하는 바람에 결국 최 회장은 자신의 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최 회장은 직원들에게 투서를 쓴 사람이 누군지 찾아내라고 호통을 쳤고, 직원들은 그 투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사실 이런 일이 한 번 쯤은 터질 줄 알았어요. 항상 불안한 마음이었습니다.”

 

 

내가 최 회장을 변호하는 것을 도와주던 K정공 총무이사인 박 이사의 말이었다. 박 이사는 최 회장이 자신에게 마음에 들지 않은 임직원에 대해서는 너무 모욕을 주었다고 말했다.

 

“회장님이 자수성가하셔서 결단력 있고 과감한 것은 좋은데요, 직원들을 내 보내는 과정에서 너무 가혹하게 하셨답니다. 20년 가까이 근무한 직원도 실수를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저지르면 ‘자네처럼 무능한 직원에겐 월급을 줄 수 없네’라고 말하고는 가차 없이 책상을 치워버리는 방식으로 회사에서 내쳤답니다. 그러면 직원들이 독한 마음을 먹게 되지요.”

 

이번에 투서를 한 사람은 10여년 가까이 경리부서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사소한 실수로 최 회장의 마음을 언짢게 하자 최 회장이 모진 말(내가 너 같은 놈에게 월급 주는 것이 아깝다)로 그 사람에게 모욕을 주었고, 결국 그 직원은 사표를 냈다. 그로부터 3달 뒤에 그 직원은 검찰청에 투서를 냈던 것이다.

 

엄격함과 모욕을 주는 것은 다르다.

 

CEO가 조직원들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 못지않게 엄격함과 위엄으로 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다양한 인센티브가 조직원들의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겠지만, 때로는 조직원들이 두려워하는 CEO의 위엄이 조직원들을 단결시키고, 그들의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게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CEO가 ‘엄격함과 위엄을 갖추는 것’과 ‘모욕을 줘서 반감을 사는 것’은 분명 다르다. CEO가 조직원들에게 모욕을 줘서 그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행위는 절대로 피해야 할 행동이다.

 

직원이 잘못한 것을 문제 삼아 해고하는 경우에도, CEO는 그 직원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주고, 회사의 기강을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한 후 그 동안 수고했다는 덕담을 해주면서 직원을 내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최 회장은 잘못을 한 직원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 이에 더하여 책상을 치워버리는 유치한 방법으로 그 직원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고양이에게 꼼짝 못하는 쥐도 막다른 골목에선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물론 CEO는 자기 권한으로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 그 점만 본다면 CEO는 직원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직장을 잃어버린 직원의 입장에서, CEO를 공격하려고 생각한다면 무슨 짓을 못할까? 인간적인 모욕을 당한 직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CEO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 동안 자신이 해왔던 모든 업무를 돌이켜 생각해보면서 회사에 손해를 가할 무언가를 찾으려고 할 것이다. 회사 내부 상황에 밝은 직원일수록 그런 종류의 정보는 더 많이 알고 있기 마련이다.

 

CEO가 회사를 운영할 때 완벽하게 법을 지키면서 흠 없이 경영하기란 쉽지 않다. 불법 차원이 아닌 편법이나 탈법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사법당국에서 문제를 삼으면 편법이나 탈법도 그 정도에 따라 처벌을 받거나 행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군주의 엄격함과 위엄을 강조하는 한비자도, 아랫사람에게 원한을 사는 짓은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제(齊)나라의 이사(夷射)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임금의 주연(酒宴)에 참석했다가 몹시 취하여 밖으로 나와 회랑(回廊)의 문지방에 기대고 있었다. 그 때, 죄를 지어 다리를 잘린 문지기가 다가와 말했다.

"대감님, 드시다 남은 술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주십쇼."

그러자 이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닥치거라. 죄를 짓고 다리까지 잘린 주제에 어느 앞이라고 그 따위 말을 지껄이느냐! 썩 물러가라."

그러자 문지기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가 이사가 그 자리를 떠나자 다시 돌아와 그 문지방 밑에다 물을 뿌려 놓고 마치 오줌을 싼 것처럼 해 놓았다.

그 다음 날 아침, 왕은 물이 마르다 만 흔적을 보고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여기에 누가 오줌을 누었느냐?"

그러자 문지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제 저녁 이사 대감께서 이곳에 서 계신 것을 보았을 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궁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이사를 처형해 버렸다.

- 內儲說下 六微-

 

 

권한이나 능력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문지기가 이사를 당해낼 수가 없다. 또한 문지기는 드러내 놓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다(즉 '이사가 오줌을 누었다'라고 말한 사실도 없다). 하지만 문지기의 이사에 대한 앙심과 원한이 일을 교묘하게 만들어 이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처럼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높은 지위의 사람에 대해 모함의 방법으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것이다.

 

CEO는 혹시 이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내가 비록 마지막 순간에는 야멸차게 했지만, 그 동안 내가 그 직원에게 해 준 게 얼만데요? 그 동안 잘 해 준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겁니까?'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잔인하게도 인간은 백 번 잘해줘도 한 번 안 좋았던 상황을 기억한다.


참으로 야속하고 무정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 말인데, 사실 이 말에는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뇌과학에 바탕을 둔 과학적 사실이 숨어 있다.


인간은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한 상황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도록 진화해 왔다. 따라서 위험하고 불쾌한 기억들은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를 자극해서 하나의 기록으로 남게 되며, 이러한 기록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 존재하기 떄문에 또 다른 위험 상황을 대처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결국 나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 어찌 저러냐.'고 섭섭해 할 것이 아니라, '인간은 원래 그렇게 진화해 와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과학적 진실이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위 투서로 인해 K정공은 6개월간 국세청의 세무조사 및 검찰의 조사를 받았고, 그 결과 대표이사를 비롯한 여러 임원들은 분식회계를 이유로 기소가 되어 집행유예 판결 및 거액의 추징금 결정을 받았다. 또한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들이 회사에 손실을 끼치게 된 것이 드러나자 K정공의 주주들은 임원들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하여, 결국 대표이사를 포함한 임원들은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K정공의 주가는 급락하는 바람에 경영권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차근차근 쌓아 올렸던 기반이 어느 시점부터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CEO로서 직원을 내보내야 할 때가 분명 있다.

어느 CEO도 이런 상황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시작할 때보다 끝 낼 때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연이 시작되는 단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잘못을 보완할 기회가 있지만 인연을 끝낼 때에는 보완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지막에 남은 그 사람에 대한 인상이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을 것이 분명하다.



●● 한비자의 위즈덤 노트


1. 나쁜 기억을 더 오래 더 강렬하게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뇌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2. 인연의 마지막을 최대한 부드럽고 원만하게 끝내야 한다. 힘이 없는 사람도 다른 이를 파괴할 정도의 악행을 행사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 지금 나의 행동은?


□ 임직원을 조직에서 내보낼 경우 그 끝마무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하고 있는지?

□ 화가 났을 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임직원들에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